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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생님 사진
    • 조현행 선생님 | 前 서문여중
    • “조현행’선생님 아니세요?
    • 2017-10-23

     

     

      금년 5월 말, 집사람과 봉천동에 위치한 동명아동복지센터(첫 방문 때 명칭은 동명학원)를 방문했다. 협소해진 마당에 있는 쉼터의 등나무를 정리하는 아저씨께 원장님 어디 계시나요?” 하고 물었더니 나를 가만히 보곤 깜작 놀라 조현행 선생님 아니세요?”하고 되묻는다. “! 맞는데요.”하니 사무실을 향해 조현행 선생님이 오셨어요!” 하는 소리에 사무실에서 여선생님 4분이 같이 뛰어 나와 반겨준다.

     

      20년 만의 방문인데.... 잊지 않고 기다린 듯이 환영해 주어 부끄러웠다.그러지 않아도 어머니(이화자: 설립자 ()김영만님의 부인, 2대 원장)원장님께서 며칠 전 조현행 선생님을 꿈에서 봤다.”고 하셨다며, “저희들은 기도시간에 조현행 선생님을 위한 기도를 꼭 한다.”고 하며 노환으로 누워계신 어머니원장님께 안내했다. 난 하나의 추억으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미안했다. 침대에 누워 일어나지도 못하시지만 다시 만남의 반가움을 눈물로 말하시는 백발의 어머니원장님을 뵈니 이제야 찾은 미안함에 작년 겨울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까지 더해져서 한참을 울었다. 어머니원장님은 우리 서문여고를 잊지 않고 계셨단다.

     

      동명학원(1980년의 명칭)과 인연을 맺은 것은 지금부터 37년 전인 198012월이다. 1950625일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한국전쟁에서 아버지가 납북되어, 당시 25세의 꽃다운 어머니는 28개월 된 아들과 9개월 된 딸을 가진 생과부가 되어 작년 90으로 돌아가실 때까지 고생만 하셨다. 물론 여동생과 나도 어렵고, 외롭게 자랐다. 나는 어린 마음에 돈 많이 벌면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을 하겠다.”장래 희망을 생각했었다. 결국 학교 선생을 직업으로 택해 돈 많이 버는 일은 틀렸지만 그래도 희망의 반쪽인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선생을 천직으로 생각했고, 내가 담임으로 근무한 22년간 학생들의 급훈은 이 있는 生活이었다. 나름대로는 학생들과 가깝게 지내며 도움이 되려, 내가 학생 때 선생님들께 나쁘게 느꼈던 점은 버리고, 좋게 느꼈던 점은 교사생활에 접목시키려 애쓰며 근무했다.

     

      배문고에서 3년을 근무하다 같은 재단의 서문여고로 자리를 옮겼다. 완전히 다른 환경이었지만 긍정적인 성격은 쉽게 적응하게 했다. 그러다가 1980년 담임반인 3학년1459명은 1년간 결석이 하나도 없는 무결석학급을 달성했다. 담임으로서 자랑스러운 그들에게 무언가 추억을 남겨주고 싶어 고아원 방문과 학급 등산을 계획했다.

     

      회장(유진월 : 극작가, 한서대학 문예창작과 교수) 부회장(김혜정)과 관악구청 사회복지과에서 추천받은 고아원 중 우리 반 학생 수와 비슷한 원아가 있는 동명학원을 선택하고 찾아 갔을 때, 검은 고무신에 어린아이를 안고 다른 아이들과 이야기 하고 계시는 50대 후반의 원장님의 모습에 감동받으며 우리의 취지를 말씀드렸더니 흔쾌히 받아 주셨다. 남녀별로 원아의 이름과 학년 아이의 특성 등을 기록했고, 원장선생님은 주의사항으로 아이들이 공평하다는 생각을 갖게 준비하면 되고, 선물을 준비한다면 너무 고가의 것은 택하지 말라.”고 하셨다. 돌아오는 길, 우리 학생들은 여기 수용되어 있는 아이들의 반 정도는 부모가 있는 아이들이다.”라는 말씀에 충격을 받은 표정이었다.

     

      행사 당일. 2학기 기말고사가 끝난 첫 주 토요일(당시는 토요일도 수업)을 방문 날로 정한 우리들은 원아들이 학교에 간 10시에 모여 한 팀은 실내외 및 학습장(교회) 청소와 정리, 또 다른 팀은 귀가하면 원아들에게 줄 떡볶이와 어묵을 준비하느라 법석을 떤다. 아이들이 돌아오고 언니 누나 맺기가 시작되자 첫 대면이라 다소 어색함은 잠시뿐 서로 손을 잡고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푸짐한 떡볶이와 어묵으로 배를 채우고는 서로가 자기 자랑에 열심이다. 원아들 방으로 이동하여 우리 학생들과 원아들은 상대방 파악에 열심이고, 여기 저기 웃음이 터진다. 이후 교회로 모인 학생과 원아들의 오락, 장기자랑 등 우리가 준비해 온 프로그램이 끝나자 총무님(현재의 원장으로 계시며, 우리가 방문 할 때마다 많은 도움을 주셨다)께서 원아들을 무대로 나오라 하시더니 우리 학생들에게 고맙다는 말씀과 함께 원아들의 노래로 답하시겠다고 하신다. 맑고 아름다운 화음은 어느새 우리 학생들과 같이 동행했던 선생님들 까지 울게 했다. 원아의 처지가 불쌍해서 일까? 부모님께 감사해서 일까? 우리는 주러 갔다가 더 많은 것을 받아 온 것이 아닐까?

    행사 다음날 학생과 어머님께 선생님 고맙습니다!”라는 전화가 이어졌다.

     

    - 그 후 동명학원 방문은 1994년까지 이어졌고, 진학지도부장을 맡게 된 1995년부터는 학교와 자매결연 하고 1학년부에서 맡아 진행했으나 아쉽게도 몇 년 후 없어졌다.

    - 학급 등산은 1986년까지 12일의 학급 야영으로 1994년까지 실시되었다.

    - 마당 쉼터의 등나무를 정리하던 아저씨, 사무실에서 뛰어나와 나를 반겨준 여선생님들은 모두 동명학원 출신으로 대학 사회복지학과를 나와 자신의 처지와 같은 아이들을 위해 헌 신하시는 아름다운 분들이다.

    - 동명학원은 현재 동명아동복지센터의 옛 명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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