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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성진 선생님 | 명덕여고
    • ‘Better Person’을 향하여
    • 2018-03-22

     

     

      어느 시기부터 다양한 부장직을 역임하게 되면서, 담임 업무는 가뭄에 콩 나듯이 하게 되었다. 우리 학교에서는 2003년부터 부장 보직과 담임 업무를 분리하여 부장과 담임을 겸임할 수 없도록 하는 인사규정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인문사회부장, 특별활동부장, 학년부장, 진학홍보부장, 연구부장을 맡아 행정적인 업무에 주력하다보니 늘 학생들과 좀 더 가깝게 만나고 싶다는 갈증이 있었는데, 금년도에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생각에 결단을 내렸다. 정년퇴임을 3년 앞두고 있는 이 시점에 부장직을 고사하고 3학년 담임 업무를 자원하였다. 교직 생활의 마지막 3년은 제자들의 곁에서 함께 지내고 싶은 열망이 컸다.

     

      드디어 우리 반에 배정된 미지(味知)의 학생들 33명 명단을 받자마자, 습관적으로(수년간 진학부장을 역임했기에) 아이들의 내신 성적을 살펴보고 참으로 난감하였다. 2학년까지의 내신 평균등급이 1등급 대 1, 2등급 대 2, 3등급 대 2, 4~5등급 대 11, 6~7등급 대 11명으로 확인되었다. 내신분포를 확인하면서 이 학생들의 진학에 대한 난감함을 생각함과 동시에 지난 세월 진학부장으로서의 반성이 교차하였다. 그동안 진학부장을 하면서 주로 상위권 학생들만을 면담하고 관리하면서 학생들 전체를 보지 못했다는 반성이었다. 1개 학년이 14개 학급인 대규모 학교라서 1, 2등급 학생들 수만 합쳐도 수십 명이었고, 그 학생들 관리만으로도 힘에 부쳤기에 상위권 학생들만을 관리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훨씬 더 많은 학생들이 이미 3학년을 시작하면서 소위 수도권 대학에는 원서 지원조차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을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다.

     

      개학하자마자, 나는 일주일 만에 아이들의 기초 면담을 끝냈다. 무엇보다 아이들의 진로 목표가 궁금했다. 서울의 인문계 고등학교인데, 3학년 출발부터 수도권 대학에 지원 가능한 아이들이 15%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면담을 끝내고 나는 다시 한 번 놀랐다. 상당수의 아이들이 이미 학업에 흥미를 잃고 다른 길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33명의 아이들 중에서, 3명은 직업학교에서의 학교생활을 준비하고 있었고, 6명은 예체능 계열 준비를 하고 있었으며, 5명 정도의 학생들은 기초학력이 너무 부족하여 공부를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이렇게 다양한 아이들의 진로 목표를 알게 되면서, 나는 학창시절에 암송했던 국민교육헌장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바로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계발하고...’ 라는 구절이었다. 비록 대학 진학을 목표로 설립된 인문계 고등학교이지만, 교육의 궁극적인 목표는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계발시켜서 자신의 적성에 맞는 진로 선택에 도움을 주는 것이 올바른 교육이 아닐까? 나아가, 이렇게 진로 목표가 서로 다른 아이들의 성장에 기여할 수 있는 공통된 가치와 목표를 찾아내는 것이 학급 담임으로서 내가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초 면담을 끝내고 나는 아이들에게 급훈을 소개하였다. 우리 반 급훈은 각자무치(角者無齒)’로 하였다.뿔이 있는 것은 이가 없다는 말로,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이 다를 수밖에 없고, 내가 무엇을 지니고 있는지를 알아서 그것에 집중하고, 아울러 남의 것을 인정하고 포용해야 한다는 의미로 학급 공동의 가치를 제시하였다. 또한 그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학급 구성원으로서 가져야할 마인드로 ‘Better Person’을 내세웠다. ‘Better Person’이란, 어제보다는 오늘이, 오늘보다는 내일이 하루하루 더 좋아지고자 노력하는 자세를 의미한다. 대학 진학을 목표로 운영되는 일반 인문계 고등학교일지라도 학업 이외의 진로를 선택한 아이들에게 무턱대고 점수 따기 위한 학업에 집중하라고 할 수 없었고, 그렇다고 성적이 좋은 아이들을 위해 학업에 흥미를 잃고 있는 학생들이 희생해야 한다고 강요할 수는 더더욱 없었다.

     

      그 후로, 나는 조·종례 시간을 통하여 ‘Better Person’을 실천하기 위한 방법을 제시하였다. 그것은 바로 수업 시간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 학업에 관심이 없더라도, 자신이 선택한 과목이 아니더라도,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는 과목이더라도, ‘Better Person’이 되기 위해서는 지금, 이곳에서보내는 시간들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루하루 성장해 나가기 위해서는 무엇을 배우든지 지금, 이곳에서배우는 그 시간들이 안개처럼 날아가 버리는 시간들이 아니라 하루씩 축적되어야만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아야하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아이들에게 수업 시간은 점수를 올리기 위한 시간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스스로가 보다 나은 사람(Better Person)’이 되기 위한 인생 공부 시간이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다. 구체적인 방법으로, 기초학력이 부족하여 수업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운 학생들에게는 수업시간 중의 내용들을 받아쓰기 형식으로라도 필기에 집중할 것을 요구하였다. 자신이 응시하는 시험 과목이 아닌 수업시간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는, 학생부에 기재되는 학업 성적 및 행동 평가가 어떻게 활용될지 모르는 일임을 상기시키면서 내신 과목은 나의 선택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과목들이 나의 삶을 보다 낫게 해주는 과목들이라는 생각을 지녀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아직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고 2주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Better Person’을 향한 학급 경영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벌써부터 우리 반 학생들의 적극적인 수업태도와 반응에 대해 선생님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학생들이 담임 선생님의 경영철학을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 받아들이려는 것 같아 다행스럽고,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진심으로 우리 반 학생들이 모두 고3 수험생 1년 동안 대학 진학 여부와 상관없이 딱 1년만큼 성장하여 현재진행형의 ‘Better Person’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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