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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생님 사진
    • 김운 선생님 | 한영고
    • 선생님, 밥 좀 사주세요?
    • 2018-04-26

     

      

      정말일까(really)?

    중국 속담에 가난하면 뜻이 짧다는 말이 있다. 가난이 아이들의 뇌 구조마저 변화시킨다는 미국 심리학회지 논문도 있다. 가난한 집 아이들은 뇌의 해마 및 소뇌 편도체의 신경회로 연결 상태가 약하고, 그래서 가난한 아이들일수록 학습 성과 및 인지기능이 떨어지고 우울증이나 반사회적 활동을 나타낼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그러나 뇌의 인지 기능 저하는 소득불균형 때문이 아니라 가난에 대한 걱정과 정서적 스트레스로 인해서 비롯되는 문제이고, 상대적 박탈감에서 비롯된 부작용이라고 생각한다.

     

      교직생활의 마지막 고3 담임으로 만난 K군은 서울 교외의 전원주택 단지에 위치한 2층 양옥으로 지어진 절(temple)의 반 지하에서 월세를 살았다. 일당을 받고 부정기적으로 실내건축 인테리어의 인부로 일하는 아버지께서는 술에 취해서 밤늦게 집에 들어오는 것이 다반사였고, 일감이 없어서 허탕을 치는 날에는 집에서 빈둥거리면서 무협지와 만화책을 잔뜩 빌려다 놓고 담배를 피워가면서 읽었다. 이러한 일상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있었고, 그럴 때 마다 어머니는 아들이 상처를 입지 않도록 하교 길을 지키고 있다가 동생과 함께 데리고 뒷동산에 오르곤 했다.

     

      3이 되어서 모질게 공부를 했다. 이미 어려서부터 학원에 갈 수 없는 형편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학교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하였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에 전적으로 의지라도 하듯이 교육풍토나 사회 시스템에 아랑곳 하지 않고 경제적인 여건의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서 미친 듯이 공부하였다. 그러다가 갑자기 운동장에 나가서 땀 뻘뻘 흘리면서 축구를 하고 들어와서 맥없이 쓰러져서 잠을 자곤 했다. 고등학교 학창시절은 추억도 없이 그렇게 흘러갔다.

     

      졸업식 날이다. 축하 꽃다발을 건네주는 가족들로 교실 주변이 가득하다. 교실 안의 졸업생들은 멋진 대학생 스타일의 양복이나 캐주얼 복장을 하고 있다. 그런데 추운 날씨에 어울리지 않게 얇고 남루한 옷차림의 K군은 혼자서 교실 밖에서 들어오지 않고 서성거리고 있었다. 서울의 명문대학 공대에 입학하여 주위의 부러움을 사면서도 세상 밖으로 나서기를 부끄러워하는 그를 급우들 앞으로 불러들여서 소개하면서 역경을 이겨내서 자랑스럽고 사랑 한다고 말해주고 가벼운 포옹으로 맞이해 주었다.

     

      세상은 험하고 사람들의 인정은 가난을 허락하지 않았다. 대학 생활이 그러했다. 학우들이 미팅을 하러 홍대 거리에 가고, 대학로 술집에 가고, 함께 어울려서 교내식당에 가고, 영화관에 가고, 오락실에 가면서도 가까이 하려고 하지 않았고 항상 혼자였고 외로웠고 우울했다. 빈곤하여 궁핍한 생활에서 비롯된 왕따는 대학에도 있었다. 어머니께서 친정 친지들의 도움으로 겨우 마련한 대학 등록금을 생각하면서 울기도 했지만 흔적도 없이 학교를 자퇴하고 군대를 갔다. 군대는 부와 빈곤을 구분하지 않고 서로가 비슷한 형태인 까까머리의 존재들이 모여 있는 자유로운 공간이었고 많은 생각을 집중할 수 있었던 사색의 시간을 제공해 주었다.

     

      도전이다. 군대 생활에서 더욱 강해진 인내심과 끈기와 도전의식으로 무장하고서 재대 후 곧바로 수험생활을 다시 시작하였다. 악으로 깡으로 견뎌냈던 지난 세월에 절실함이 더해졌다. 진로 목표는 의사로 정하고 의과대학 진학을 위하여 때늦은 재수생이 되었다. 물론 이미 산업현장에 뛰어든 동생의 반대와 직업인으로서 의지가 약한 아버지와 갈등이 있었지만, 아들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과 생활력이 강한 어머니의 강력한 지원으로 집과 동네 도서관에서 독학을 하였다. 가난에서 벗어나거나 삶이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지만 마음은 한결 밝고 얼굴에 웃음을 되찾았으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3년 정도 지나서야 비로소 선생님! 밥 좀 사주세요라고 말을 하는 여유로움도 생겼다. 자세가 근엄하고 생각이 아름다운 건강한 청년이 되어서 다시 만났다.

     

      의과대학은 쉽사리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군대를 다녀온 사이에 의학 전문대학원 제도가 생겨서 의대 정원이 줄어들었고, 수시 1학기는 폐지되었고, 입학사정관제 전형요소라는 생소한 대입제도가 생겨서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그러한 입시제도의 변화에 쉽사리 굴복하지 않고 4년간이라는 긴 고난의 세월을 계속해서 도전하였다. 수시, 논술, 입학사정관 전형은 그를 외면하였고 오로지 수능을 공략하는 정시 전략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7년 만에 정시전형으로 외갓집이 있는 지방 국립대 의대에 진학하였다.

     

      우리는 의술보다는 인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의사의 덕목으로 인성을 강조한다. 마음을 치료하는 의사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환자와 소통하고 아픔을 공감하는 능력이 필요할 것이다. 누구보다 오랜 시간동안 많은 마음의 아픔을 경험하였기에 가난을 벗어나는 직업으로서 경제적인 지위의 의사가 아니라 히포크라테스 선서에 투철한 삶을 살아가는 사명감을 지닌 의사가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먼 훗날 다시 한 번 밝게 웃으면서 선생님 밥 좀 사주세요라고 말하면서 다가서는 여유로운 모습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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