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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생님 사진
    • 진동섭 선생님 | 前 영동일고
    • 선생님보다 더 어른스러웠던 ‘오’

     

     올림픽이 열렸던 1988년에 나는 2학년 담임을 맡았다 그 전해와 그 전전해에는 3학년 담임을 했었다. 88학년도 입시가 선시험 후지원에서 선지원 후시험으로 바뀐 바람에 입시 지도가 좀 혼란스러웠는데 다행히도 성과가 좋아서 매우 기고만장해 있었다. 당시에는 겨우 5년차 애송이 교사였지만 입시는 학력고사로 치르던 시대였으니 교과서 싹 외우고 문제집 다 풀면 모르는 것이 없는 상태가 되었던 시절이었다. 1986년의 3학년 첫 담임으로 선시험 후지원 체제에서 진학지도를 하고(물론 교과지도도 열심히 했지만 그래봐야 교과서만 가르치면 되니까 부담은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논술고사가 있어서 논술 수업도 했었다.) 1987년에는 선지원 후시험으로 진학지도를 하고나니 교과의 달인, 입시의 달인이 된 느낌. 지금 돌이켜보면 근거 없는 자만이었지만.

     

     당시 영동여고는 지금은 남녀공학이 되어 영동일고로 이름도 바꾸었는데 23학년 담임을 하면 다른 학년도 2년 이상은 하는 것이 불문율이었다. 1988년에는 불문율대로 2학년 담임을 맡았는데 10반 담임이었다. 그 해는 왠지 좋은 일이 많을 것 같았다. 지난해에도 잘 했었는데 올해쯤이야. 지금은 상상이 안 되겠지만 내가 담임인 10반은 모두 63명이었다. 같은 교실에 지금은 3분의 1만 들어가는데도 좁아 보이니 그 당시에는 얼마나 콩나물 시루였을까? 새롭게 아이들 앞에 서서 나를 믿고 따르면 학교생활이 행복할 것이라고 큰소리를 쳤었다. 우리 반 급훈은 우리 내일은 행복하리라였는데, 아이들은 이걸 우내행이라고 불렀다. 얼핏 고진감래가 떠오르지만 그런 뜻보다는 큰 뜻이라고 말하면서 내일을 향했었다.

     

     더군다나 지난해에 눈에 자주 띄던'오'가 우리 반에 배정되어 왔다. 주위에서 올해는 담임 편하게 하겠네. 오가 담임보다 더 담임 같거든.”하면서 부러워들 한다. 나는 저는 제가 다 알아서 해서 잘 하던 애도 바보가 돼요.”라면서 잘난 체를 했었다. 곧 있었던 반장 선거에서는 저절로 가 매우 많은 득표를 했다.

     

     그 해에 나는 학생회 운영위원 지도교사를 맡았다. 매일 청소시간에 학생회 운영위원이 모이는데 매일 여기에 참석하느라 교실 청소 상황은 반장이 챙겼다. 나는 학생회 활동에도 관심이 있어서 학생회가 당시 학생회비 예산 편성하기, 학생회 연간 사업 계획 세우기, 학생이 스스로 계획하는 수련회 운영하기 등을 추진했었다. 여기에는 대의원회 운영도 포함되어 있었다. 대의원회의에서는 학생들이 스스로 해결해야 할 일을 논의하고 결정하기도 하지만 학급에서 나온 건의사항을 들어달라는 발표가 더 많다. 건의는 대부분 좀 실망스러운 수준이다. 3교시가 끝나면 도시락을 먹게 해 달라거나, 실내화를 신지 않게 해 달라는 등. 아침자습시간에 HR을 허용해 달라는 건의도 있었다. HR이란? 하이틴 로맨스라는 멜로 소설집이다.

     

     한번은 자유복 입는 날을 만들어달라는 건의가 있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진지한 토론이 이어졌다. 얼핏 든 생각은 대부분의 학생들은 자유복 입는 날에 찬성할 것이고, 그렇다면 학교는 허용하지 않아 학생들이 불만을 갖게 되겠지.’였다. 그런데 그날 는 번쩍 손을 들어 발언 신청을 한 뒤에,

     

    우리는 자유복을 입는 것을 바라지만 일주일에 한 번 자유복을 입는다고 해서

    대부분의 날들이 자유로워지는 것도 아니고

    부모님들은 더 부담을 갖게 되기도 하니 자유복 입자는 건의는 우리 스스로 거둬들이도록 합시다.

    자유복을 입고 싶은 사람만 입자는 의견도 결국은 자유복을 모두 입게 되는 시작에 불과하니

    이 주장도 역시 거둬들이기를 바랍니다.”

     

    라고 했다. 몇 학생의 발언이 더 이어진 뒤 표결을 했는데 학생들은 자유복 입자는 안에 표를 주지 않았다.

    선생님보다 어른스러운 생각을 할 줄 아는 ’.

     

     교실에서 학급문집을 내고 이를 인쇄하기 위해 아이들끼리 돈을 좀 거둬 두었는데 사물함을 뜯고 돈을 가져간 일이 생겼다. 나는 종례 시간에 잠시 잘못 생각으로 돈을 가져갔겠지만 다시 생각해보고 가져오라고 하소연했다. 다음날도 물론 돈은 돌아오지 않았다. 학급 분위기는 갑자기 남극이 된 듯. 삼일이 지나고 가 왔다. 돈이 돌아왔다는 것이다. 나는 내 이야기에 감동한 어떤 학생이 갖다놓았을 거라고 믿고 내 스스로 대견했었다.

     

     한해는 그렇게 갔다. 우리 반 급훈 투[2]도 있었는데 아이들이 지은 국화 속처럼이었다. 우리 반 문집도 국화 속처럼이라는 제목을 달고 나왔고 한 학생도 빠지지 않고 글을 썼었다. 사랑스럽고 자랑스러운 우리 반에 대한 이야기가 가득 들어 있는 문집이었다.

     

     ‘3학년이 되고 마침 3학년 담임 선생님과 나는 뗄 수 없는 관계(오의 3학년 담임 선생님은 내가 대학 들어가니 2학년 과대표였다.)라 같이 오의 진로를 같이 고민했었다. 하여간 오는 졸업을 하고 대학에 진학했고, 유학도 갔다 왔다는 소문. 만나지는 못 했다 

     

    10년이 지난 뒤인 2000,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가 화제일 때 가 인사차 들렀다. 사립학교가 좋은 점은 내 자리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연락이 없던 제자가 불쑥 나타난다. 29년 만에 국내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던 친구는 그새 미국에서 미술대학 교수가 되었노라고 불쑥 나타난 일도 있었다. 점심을 3학년 때 담임과 같이 하면서 옛날 학교 때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선생님, 그때 우리 반에서 없어진 돈은 제가 엄마한테 달래서 갖다놓은 거였어요. 반 분위가 안 좋아 지길래…….”

     

     모든 근거 없는 자만과 우쭐하고 살았던 내 과거가 안전유리 깨지듯 흘러내렸다.

     핑 도는 눈물과 함께.

     

     201012월 말. 10년 만에 로부터 연하장이 왔다. 프랑스에서 3, 튀니지에서 2년 해외근무하다 귀국했고 육아휴직중이고, 40이 되는 내년(2011)에는 과거 나에 대한 40년의 투자가 좀 더 결실이 있을 수 있도록 노력할 예정이라는 소식을 담아. 이제는 2020년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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