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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형인 선생님 | 前 서문여고
    • 진학 단상(斷想)

     

     고3 담임을 처음 맡았던 80년대 초는 지금처럼 진학지도에 참고할 만한 자료가 별로 없었고 학교마다 체계적인 진학지도시스템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시절이었다. 따라서 진학지도에 경험이 없는 교사는 이전년도 합불 자료나 선배들의 경험담에 의지하여 진학지도를 할 수밖에 없었다. 첫해는 자료의 활용이나 지도 방법이 미숙하여 학생들에게 제대로 진학지도를 하지 못해 결과가 썩 좋지 않았다. 지금도 그 때 학생들에게는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

     

     첫 해 입시를 마치고 나서 시행착오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곧바로 새 학년도 진학지도에 대한 준비를 시작했다. 우선 학교의 수년간 진학 결과를 분석하면서 통계 자료도 만들어 보고 각 대학별, 학과별 특이점과 변화의 추이를 비교 검토하면서 입시와 관련된 제반 내용을 숙지하였다. 대학입시는 전반적인 흐름의 맥락이 있고 해마다 시행되는 입시제도의 변화에 따른 양상이 있었다. 따라서 효율적인 진학지도를 하기 위해서는 변화되는 진학지도의 흐름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이해하는 것이 중요함을 깨달았다. 그리고 학생들의 진학지도는 개인별 성향이나 학습 특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현실성 있는 맞춤형 지도를 해야 한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진학 지도를 하면서 가장 고심했던 학년도는 대학입시 제도가 선지원 후시험으로 변경된 첫 해인 1988학년도 입시였다. 그동안 실시해 오던 선시험 후지원제도가 극심한 눈치작전으로 인해 사회적 이슈가 되자 이를 시정하기 위해 실시한 것이었다. ‘선시험 후지원에 대비한 진학지도는 개인별로 학력고사 성적과 내신 성적이 객관적인 수치로 정형화 되어 있으므로 이를 바탕으로 각종 통계나 자료를 활용하면 지도하는데 별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선지원 후시험제도는 어떤 근거로 학생들을 대학에 지원시킬 것인지 무척 난감하였다. 수차에 걸쳐 외부 평가기관의 배치고사를 실시했지만 학생들의 시험 성적은 편차가 심해 성적만으로 지원을 시켜서는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가 어렵다고 판단하였다.

     

     물론 학업 성적이 가장 중요한 근거자료가 되는 것이지만 성적 이외에 담임교사로서 학생의 학습이나 생활면에 대해 느끼고 있는 신뢰도를 참고하는 것이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합격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생의 학습태도, 학업에 대한 열정, 자기 주도적 학습능력 등은 객관적 수치로 구체화할 수는 없는 요소들이지만, 평소 교사의 입장에서 학생을 관찰하며 느끼고 있는 신뢰도는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왜냐하면 학생의 개인별 성향에 따라 학업성취도의 편차가 달라지고 또한 개인차를 드러내는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다소 모험을 한다는 생각도 들었으나 확신을 갖고 학기 초부터 학생들을 관찰한 누가기록을 작성하고 개인별로 성적의 흐름을 분석하여 지원에 참고할 자료를 만들었다. 이 자료를 활용하여 비슷한 성적이라도 대학 지원을 달리하였다. 원서를 제출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때로는 불확실성 때문에 다 떨어질 것 같은 불안한 생각이 들기도 하였으나 막상 발표가 되니 어느 해 보다도 우수한 성과를 거두었다.

     

     고3 담임을 하는 동안 많은 학생들을 지도했지만 교사로서 학생에 대해 전폭적인 신뢰감을 느낀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다.

     

    1988학년도 담임 학급에는 학업 성적이 매우 우수한 학생 중에 대조적인 두 학생이 있었다.

     한 학생은 자신의 학습 목표에 필요한 공부가 무엇인가를 스스로 찾아서 할 줄 알아 자기 주도적 학습 능력이 뛰어났고, 학업에 대한 성취 욕구가 강하여 목표를 설정하면 끈질긴 노력으로 반드시 실현하는 의지를 보인 학생이었다. 담임교사로서 확고한 믿음과 신뢰감을 느끼는 학생이었다.

     

    다른 한 학생은 학업 성적은 매우 우수하였으나 사교육의 영향인지 타율적인 학습에 익숙하여 교사의 세밀한 관찰 및 지도가 필요한 학생으로 성적도 편차가 다소 심한 편이었다. 1학기 동안 두 학생은 성적 면에서 항상 일정한 점수 차를 보였는데 일 년 간 그 격차를 좁히지 못하였고 학력고사의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그것은 두 학생의 자기 주도적인 학습능력의 차이 때문이라고 판단하였다. 따라서 두 학생의 경우, 평소 학습지도나 성적 관리를 하면서 방법을 달리 하였다. 그리고 대입 지원을 할 때에도 성적만이 아니라 평소 담임으로서 느끼고 있는 신뢰도를 반영하여 지원을 차별화하였다. 전자는 대학 및 학과를 선택할 때에 기대치를 감안하여 소신 지원을 하도록 지도하였고, 후자는 불확실성을 배제하기 위하여 평균점을 근거로 안정적 지원을 유도하였다. 다행히 두 학생은 모두 서울대에 합격하였다.

     

     바람직한 진로진학지도를 하려면 먼저 학생과 교사 간에 서로 믿고 신뢰하는 관계가 형성되어야 한다. 안타까운 것은 현재 학교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이다. 급격한 사회적 변화에 따라 학교사회가 믿음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 교육적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고 개인별 이해관계에 따라 학교교육이 변질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제대로 된 학교교육은 물론 효율적인 진학지도를 실현할 수 없다.

     

     입시제도는 해마다 달라지고 그 내용도 점차 다양화 복잡화되고 있다. 따라서 현재의 입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전 학년에 걸친 진로지도 계획이 수립되어야 하고 이에 알맞은 개인별 맞춤식 진학지도가 학년별로 실시되어야 한다. 이러한 진학지도가 실현되려면 무엇보다 교사들이 의욕을 갖고 소신껏 진학지도에 임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지역사회 내에서 학생의 학력 수준이나 여건이 비슷한 학교 간에 입시 결과의 차이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것은 학교나 교사들이 진학지도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기울인 열정과 노력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학생과 교사, 학부모와 교사가 믿음과 신뢰를 바탕으로 관계를 구축하지 않으면 진학지도의 효과는 기대하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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